하루는 꼬마(고양이) 때문에 시작돼요. 늘 제가 원하는 기상 시간보다 일찍 깨우거든요.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간의 추세를 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수면 부족으로 고생하는 것도 아니고요. 좋은 붓과 물감으로 그린 예쁜 선 하나가 삶에 더해지는 기분이에요. 하루가 조금 일찍, 항상 누군가의 강렬한 애정 표현으로 시작된다는 건.
꼬마 얼굴을 한참 쓰다듬은 다음에 하는 일은 머리 맡의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거예요. 딱히 기다린 소식도 없고, 보이는 거라곤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 뿐인데도요. 심한 날은 목이 말라서 견디기 힘들 때까지 창을 이것 저것 바꿔 가며 계속 새로 고쳐요. 힘겹게 일어나 거실로 나가 물을 마시며 생각해요. 내일은 이러지 말아야지.
잠에서 깨자마자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당연히 그렇겠지, 하며 흘리려다가, 턱 하고 걸리는 말이 있었어요. 아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뇌를 강제로 ‘반응 상태’로 만든대요. 그 말의 정확한 정의는 모르지만 내 아침을 떠올리면 대충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강제로 반응한 대상이 죄다 원하지도 않았던 정보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뇌한테 어찌나 미안한지…
다들 그렇겠지만 제 뇌도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40년 동안 하루도 쉰 날이 없으니까요.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도 들어요. 입력된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 중요한 걸 찾아서 꺼내는 데 시간이 걸려요. 근데 뇌 주인은 그걸 기다려 주지도 않고 계속 꾸역 꾸역 뭘 집어 넣어요. 뇌는 점점 짜증이 나서 이제는 꽤 자주, 모든 걸 놔 버려요. 아 몰라 나 대신 인터넷 알고리즘이 시키는 대로 흘러 가든지 말든지.
얼마 전 무선 충전 패드를 하나 더 샀어요. 거실에 놓고,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갖다 두려고요. 뭔가 해야겠다 생각하면 일단 물건부터 사라고 인터넷 알고리즘한테 배웠거든요. 근데 역시 잘 안 돼요. 지금 이 글도 누워서 자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뇌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느낌이에요. 이런 기분으로 뭘 써본 게 얼마만인 지 모르겠어요. 무언가를 쓰든 그리든 부르든, ‘모르는 누군가’를 완전히 의식하지 않기란 힘들거든요. ‘어서 더 재미난 걸 떠먹여 주길 기다리며 나처럼 매일 새로고침을 하고 있을, 서로 아무 것도 모르는 누군가’를.
소중한 얼굴들, 소중한 마음들을 떠올리고 있어요. 하루 중에 이런 시간을 늘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하루가 점점 더 짧아지는 느낌이지만, 그럴 수록 더. 애써 그린 예쁜 선 위를 아무 맥락 없는 낙서들로 덮어 버리고 싶지 않아요. 내내 그런 생각을 하며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이 공간을 만들었어요. 제 이름으로 된 도메인을 장기 결제한 게 아직 3년이나 남았더라고요. 가능하다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천천히, 이런 마음으로 유지하고 싶어요.
벌써 알고 일부러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맙고 기뻐요. 당신을 위한 이 글을 미리 써 둔 오늘의 기분으로, 내일은 그간 뜸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좀 해야겠어요. 그럼 저는 이만 스마트폰을 갖다 두러 거실로 갑니다.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날도, 모두들 건강하고 평화롭기를.
굿나잇!